서민 주거의 디딤돌 역할을 해온 빌라 등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고사 직전에 몰렸다. 전세 사기 여파로 촉발된 비아파트 기피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임차인들이 전세를 기피하고 월세로 대거 몰리는 기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임대차 유형의 변화를 넘어, 서민층이 자산을 형성해 내 집을 마련하는 '주거 사다리' 자체를 붕괴시키는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실제 시장의 수치는 이러한 경고음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정부의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 비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무려 78.7%에 달했다. 임대차 계약 10건 중 8건 가까이가 월세로 체결된 셈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세입자들이 매달 수십만 원의 추가 지출을 감수하더라도 월세를 선택하는 '안전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이 키운 비아파트 기피와 월세화 가속도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급격한 월세화는 전세 사기 사태 이후 누적된 불신에서 기인한다. 과거 빌라 전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증금으로 주택을 임차해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잇따르고 빌라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비아파트 전세 시장은 '위험 지대'로 전락했다.
이러한 기피 현상은 아파트 전세 시장으로의 수요 쏠림과 비아파트 월세 가격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낳고 있다. 전세 자금을 확보할 여력이 있는 임차인들은 대거 아파트 전세로 이동해 아파트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반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서민과 청년층은 비아파트 월세 시장에 머물며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무너진 주거 사다리, 청년·서민층의 고통
비아파트 전세 기피는 단순히 주거 형태의 이동에 그치지 않고 서민 주거 사다리의 단절을 의미한다. 한국의 전형적인 주거 상향 경로는 '비아파트 전세 -> 아파트 전세 -> 내 집 마련'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비아파트 전세라는 중간 고리가 사라지면서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무주택 서민들이 자산을 축적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있다.
매달 지출되는 월세는 고스란히 소비로 사라지는 비용이다. 저축 여력이 극도로 저하된 임차인들은 장기적으로 내 집 마련의 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향후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아울러 수요 감소로 인해 비아파트 신규 공급마저 급감하면서, 향후 저가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주거 불안정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 신뢰 회복과 제도적 보완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무너진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아파트 시장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아파트 위주의 공급 대책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임대인의 정보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임차인이 계약 전에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나 선순위 채권 현황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안착시켜야 한다. 또한 공공임대 및 공공전세 주택의 공급을 비아파트 영역까지 적극적으로 확대해 시장의 안전판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아파트 시장의 정상화 없이 서민 주거 안정은 요원하다는 점을 명심하고, 다각적인 신뢰 회복 대책을 서둘러 실행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