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를 포집해 건축자재로 바꾸는 기술, 폐열로 전기를 재생산하는 장치, 도심 수직 농장에 최적화된 저전력 조명 시스템. 이 기술들의 공통점이 있다.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개발했고, 기술 검증도 마쳤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창고 어딘가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허가 기준이 없거나, 기존 산업 분류에 맞지 않거나, 실증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해서다.
기후테크(Climate Tech)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 분야 전반을 아우른다. 에너지 전환, 탄소 포집, 친환경 모빌리티, 스마트 농업까지 범위가 넓고 성장 잠재력도 크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냉정하다. 관련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 규모는 글로벌 상위 10개국 평균의 7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니 투자 근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본지는 이 문제의 핵심이 규제 공백과 규제 과잉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본다. 첫째, 신기술에 맞는 인허가 체계가 없다. 기존 환경·에너지 관련 법령은 대형 설비 위주로 설계돼 있어, 소규모 분산형 기후테크 솔루션은 어느 규정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결국 스타트업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간 관련 부처를 전전하며 담당자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이 소진되고 인재가 떠난다.
둘째, 실증 특례 제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신기술의 임시 허가를 가능하게 해두었다. 그러나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 좁은 적용 범위, 실증 이후 본허가로 연결되지 않는 단절이 문제다. 샌드박스에 들어가도 모래밭에 그대로 묻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후테크처럼 기술 사이클이 빠른 분야에서 2~3년의 실증 공백은 사업 자체를 끝내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 기후테크를 바라보는 산업 정책의 눈높이가 너무 낮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기후테크 분야에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유럽은 그린딜 산업계획 아래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과 연계해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한국은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지만, 그것을 달성할 민간 혁신 생태계를 키우는 데 들어간 제도적 투자는 선언의 무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기후 위기 대응은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이고, 실패를 감수하며,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본령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 에너지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통로를 여는 것이다. 기후테크 전담 패스트트랙 인허가 체계, 실증에서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규제 전환 로드맵, 그리고 기후테크에 특화된 공공 조달 시장 개방이 지금 당장 논의되어야 한다.
탄소중립 2050은 28년 뒤의 목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창고에 잠들어 있는 기술들이 시장으로 나오느냐 아니냐에 달린 현재의 선택이다. 혁신을 실험실에 가두는 규제는 그 자체로 기후 위기의 공범이다.
